본문강술

 

(1)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께서는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실행하실 때에

오온이 다 공한 것을 체험하시고

온갖 고통으로부터 최대의 기쁨을 이루시었습니다.

 

반야심경의 일곱 가지 번역 중에는 간략한 번역이 있는가 하면 앞뒤의 체제를 맞추어서 구체적으로 된 번역도 있습니다. 간략한 반야심경을 약본(略本)이라 하고, 구체적으로 된 반야심경을 광본(廣本)이라 합니다. 그런데 광본에는 서론, 본론, 결론이 다 갖추어졌으나 약본에서는 서론과 결론이 생략되고 본론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는 반야심경은 약본입니다. 그러므로 서론이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관자재보살은 바로 관세음보살이십니다. 관세음보살은 반야심경의 설법주(說法主)이십니다. 설법주란 반야심경이 관세음보살에 의해서 설해졌다는 뜻입니다.

반야심경은 관세음보살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말씀하신 경전입니다. 대승경전은 이러한 격식으로 설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화엄경을 설할 때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은 39품 중, 아승지품 1편과 기타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머지 38품은 다 문수, 보현, 금강장 등의 보살이 설법주가 되어 설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보살은 자의에 의해서 설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호력에 의하여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설한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의 관세음보살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관세음보살은 반야에 의한 바라밀행을 실천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자비행입니다. 자비는 반야에서 나옵니다. 반야의 힘으로 우주와 인간의 근본 실상을 확실히 보았을 때 자비의 실행은 왕성하게 실천됩니다. 자비가 없는 반야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반야심경의 관세음보살에게도 확연히 증명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실행하실 때에 인간의 근본을 확실히 보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견 오온개공’ 입니다. 반야는 조견의 능력이 있습니다. 조견하는 능력에 따라서 참된 것과 헛된 것을 구별합니다. 이에 따라서 창조적 보살행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조견은 인식입니다. 반야는 참다운 존재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존재의 확실한 인식에 의하여 용기와 행위가 일어납니다. 인식은 지식이 아닙니다. 지식은 알고 있으나 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반야는 아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지식이 과거적이라면 인식은 현재적입니다. 인식의 모체가 되는 반야는 항상 현재 속에 있습니다. 현재 속에서 과거를 보고 현재 속에서 미래를 판단합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반야는 삼세(과거,현재,미래)를 통괄하는 인식입니다. 이러한 인식에는 미심쩍은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명백하고 분명합니다. 이에 망설임이 없고 주저함이 없습니다. 반야에는 일체 두려움도 있을 수 없습니다. 두려움이란 모르는 데서 생기는 망상(妄想)입니다. 이 공포의 망상은 인간의 힘을 여지없이 빼앗아 갑니다. 그리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은 바보가 됩니다. 그러나 반야로서 사실 존재에 대하여 철저히 인식하면 용기있는 실천으로 일관이 됩니다. 바로 부처님이 그러하시며, 관세음보살이 그러합니다. 이에 반야심경에는 ‘인식’의 문제를 ‘오온개공’으로 체험했고, ‘실천’의 문제를 ‘도일체고액’으로 전개합니다. 오온(五蘊)이란 인간을 말하는 것이며 개공(皆空)은 우주의 절대 평등을 의미합니다. 이 평등의 세계를 반야심경에서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반야의 체험에 의하여 끝없는 자비행이 전개됩니다. 이것이 모든 고통을 없애는 일입니다(度一切苦厄). 반야의 확실한 인식에 의하여 자신의 고통은 일시에 없어졌으며, 모든 중생의 고통을 자기화시켜서 노력하는 것이 자비입니다. 이러한 분이 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이 바로 그러한 보살이십니다. 그런데 경전 구성상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반야심경의 설법주는 관세음보살이신데 어찌하여 관세음보살의 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반야심경을 관세음보살이 말씀했다면 관세음보살 스스로가 자신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관세음보살의 말씀이 아닙니다. ‘관자재보살로부터 도일체고액까지의 경문은 아난(阿難)존자께서 관세음보살에 대하여 소개한 말씀입니다.’ 관세음보살께서 사리불(舍利弗)을 향하여 반야심경을 설하고자 하실 때에 아난존자는 관세음보살을 위와 같이 소개한 것입니다. 사리자에서부터는 관세음보살의 설법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반야공이언등(般若共利言等)의 번역본에 의하여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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